이 정도 만듦새와 물량투입은 반칙 아닌가... -메트로놈 LE DAC2

2023.02.15

 

 

메트로놈(Metronome Technologie)社의 클래시카(Classica)라인은 동사의 중추역할을 하는 주요 라인업 입니다. 보통은 플래그쉽 및 예하의 비싼 모델에 주력을 다 하고, 그 아랫 급으로는 이른바 보급형 모델이라는 범주를 씌우기 마련인데요

 

"우리의 주력 얼굴마담은 이 것(비싼 모델)이다! 


돈 없는 자들은 그 아래의 보급형 모델이면 족할 것이다. 


값은 저렴하지만 그래도 우리의 기술이 녹아든...."

 

무언가 무시당하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업그레이드 욕구를 자극하는 고도의 심리 마케팅인가 싶기도 합니다.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고 장만한 오디오 장비가 무언가 부족한 점이 여실히 남아 있고, 때문에 내 시스템에서 최선이 아닐 수 도 있다는 불쾌한 느낌이 들지요. 

 

그런데, 메트로놈은 좀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메트로놈 본사에서 클래시카 라인업의 핵심 제품인 Le DAC 2를 소개하는 글을 살펴보면, 브랜드의 오너이자 개발자 양반이 이 제품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제품을 만들 수 있어서 참 행복하다는 표현까지 하는 걸 보면, 적어도 Le DAC 2가 메트로놈 집안에서 서얼의 굴레에 같혀있는 것 같진 않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느낌이 확신이 되는 계기가 있었으니....

 

메트로놈이 Le DAC 2를 생각보다 작정하고 만들었다고 확신할 수 있었던 것, 

다름 아닌... "제품의 내부 사정"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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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앰프 류의 퀄리티를 설명할 때, 늘 전원부의 중요성을 역설해 왔습니다.  

 

간단합니다. 밥 잘 먹는 머슴이 일도 더 잘하니까요. 식사의 양도 중요하지만, 단순히 칼로리 할당치를 채우는 것이 아닌, 영양소의 균형과 먹는 이의 입맛까지 고려한 고급 끼니는 일의 능률을 올려줍니다. 머슴 뿐 아니라 우리들 대부분이 그러하지 않나요? 앰프도 오디오 시스템에서는 힘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내는 입장이다 보니 매한가지의 알고리즘을 가집니다. 

 

오디오 제품이 소비하는 전기의 양과 질과 변수는 우리의 생각보다 다양하고 복잡다단합니다. 한 가지 방법으로 무식하게 물량을 때려 넣는다 해서 하이엔드가 되지 않으며(그러니까, 트랜스 크다고 캐패시터 용량 크다고 장땡이 아니란 말씀) 오랜 세월의 배움에서 비롯된 정교한 설계, 그것도 한 사람의 것이 아닌 여러 스페셜리스트들의 브레인스토밍 결과물이 절실합니다.

 

이는 앰프 뿐 아니라 소스기기인 DAC에도 해당사항이 동일합니다. 다만,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볼 수는 있습니다. 육체노동자와 정신 노동자의 필요 영양분과 식사 타이밍이 다르듯, 소스기기에 적절한 전원부 설계의 노하우는 결코 앰프와 동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앰프 잘 만든다고 소문난 엔지니어가 소스기기도 비스무리하게 잘 만들 수 있다는 보장은 할 수 없습니다. (개중에 보면 앰프와 소스기기를 모두 다 수준 급 이상으로 잘 만드는 브랜드도 왕왕 보이는데, 이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메트로놈이 소스기기 쪽으로 소위 "몰빵"하는 브랜드임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른바, "단일 메뉴 맛집"이론에 정확히 부합하는 브랜드인거죠. 만약에, 파텍 필립 같은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에서 자사의 이름을 걸고 손목 시계 외에 다른 잡다한 것들을 적극적으로 만들었더라면 지금같은 최고의 품평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잘 만들었고, 그래서 이름이 알려지고 그 이름으로 다른 또 무언가를 하는 그런 순환고리가 꼭 나쁜 건 아니지만, 적어도 해당 분야의 최고가 되는데에 도움이 되진 않을 겁니다.

 

메트로놈은 디지털 소스기기 분야에 스페셜리스트로서 집중하고 있는 브랜드입니다. 그런데 기술적으로 보면 메트로놈의 집중 포인트가 또 한 가지 발견됩니다. 바로 전원부 물량투입과 기술에 대한 것인데요, 앞서 잠깐 언급하기를, 단순한 물량투입 자체만으로는  하이엔드를 만들 수 없다 하였습니다. 하지만 전원부 물량투입이라는 것은 하이엔드에의 충분조건은 아닐지언정 필요조건이 되는 것은 맞는 이치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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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량투입만으로 하이엔드가 되진 않지만, 


하이엔드 오디오 제품 대부분이 물량투입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는 하다."

 

​는 것입니다. 

 

디지털 소스기기 전문인 메트로놈이, 기술적으로는 전원부 관련 기술의 전문 브랜드이기도 한 것입니다.

자, 메트로놈 Le DAC 2의 내부 사정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AQWO와 동일한 트랜스포머(트로이달 트랜스)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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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위 모델인 아쿠우(AQWO) 기본 모델에는 전용 트로이달 트랜스가 3개 장착되어 있습니다. (진공관 버전은 5개) Le DAC 2는 아쿠우의 하위버전이라고는 하지만(가격적으로 볼 때) 아쿠우와 동일한 3개의 트로이달 트랜스가 사용됩니다. 아쿠우 보다 저렴한 가격대의 제품이지만 메트로놈 측에서는 이 부분 만큼은  타협하기 싫었나 봅니다.  

 

회로를 간단히 살펴보면 컨트롤/디스플레이 부분, 디지털 회로(DA컨버팅회로), 그리고 아날로그 회로(아날로그 출력) 이렇게 세 부분에 각각 독립적으로 트랜스를 사용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쿠우와 동일한 구조이지요. 사용된 탈레마(talema) 트로이달 트랜스는 물론 오디오 그레이드 이상의 고급 브랜드 제품입니다.

 

하이엔드 오디오 제품의 기본 소양은 "의미 있는 분리" 입니다. 프리/파워 등으로 나누던지 전원부를 나누던지... 그리고 한 제품 내부에서는 전원부를 어떻게 또 나누는지가 기본이 되지요. Le DAC 2의 하이엔드적 소양은 이렇게 전원부의 시작인 트로이달 트랜스를 용도별로 분리해 쓰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2. 무지막지한... 전원부 구성

 

자, 앞서 이야기하기를 육체노동자와 정신노동자의  섭취 영양소와 타이밍은 다르다고  했지요? 오디오 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스기기, 그러니까 전력량 소모가 앰프보다 훨씬 적긴 하지만 전기의 질에 대해서는 앰프보다 민감한 제품들은 앰프 개념으로 전원부 물량투입을 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정전압 회로"라는 것을 매우 정교하게 설계하는데요, 메트로놈 Le DAC 2는 여기에서 또한 아주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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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콘덴서 숲 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수량의 캐패시터들이 빼곡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대부분 전원 캐패시터들인데요(그것도 일차 전원부) 

 

"전원 평활 캐패시터"라고 해서 앰프 등의 내부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캐패시터의 일반적인 모습은 아래와 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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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량이 큰 것을 두 개, 혹은 네 개 정도 사용합니다.  물론 SMPS라 불리는 스위칭 파워(쉽게 말해서 전원 아답터 같은 작고 간편한 방식)에는 해사항이 없지만, 전통적인(그리고 음질적으로 우세하다고  평가받는)리니어 파워 서플라이에서는 대게 이런 식입니다.  

 

만드는 입장, 설계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당연히 위 사진과 같이 단순하게 캐패시터 구성을 해야 합니다. 메트로놈 Le DAC 2같이 무식하게(?) 캐패시터 범벅을 해 놓는 것은 아무리 봐도 효율적이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하이엔드는 효율의 영역을 넘어서는 개념임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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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건 또 하나의 하이엔드 브랜드인 그리폰(Gryphon)의 칼리오페(Kalliope) DAC 입니다. 가격은 Le DAC2의 세 배 정도 되는군요. 3천 6백만원 입니다. 여기에서도 전원 캐패시터 구성을 메트로놈 Le DAC 2와 같이 나열해 놓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트랜스는 두 개가 사용되었군요. 

 

비용이 많이 들어가지만, 이러한 방식은 디지털 소스기기의 전원부 구성방법으로는 아주 이상적인 방법입니다. 이른바 "정신노동자"에 해당하는 디지털 소스기기(앰프는 육체 노동자에 빗댈 수 있겠죠)에 필요한 소양이 고루 갖추어진 영양식인 셈이죠. 누차 강조하지만 돈 많이 들고 번거로운 방식입니다.

 

캐패시터 물량투입은 Le DAC 2에 있어 디지털/아날로그 부분 모두에 베풀어집니다. 심지어 음질과 크게 상관 없어 보이는 컨트롤러 쪽 회로에도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결국 이 부분도 음질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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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패시터의 양은 그렇다 치고, 질은 어떨까요? 미쯔비시社의 105도 급 제품이 쓰입니다. 일반인들은 잘 모를지 몰라도, 오디오 엔지니어라면 환장을 하고 주워담을 부품들이지요. 자 지금까지는 단순한 물량 투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필자가 주목한 것 하나, Le DAC 2가 하이엔드 사운드를 만들 수 밖에 없겠다는 확신이 드는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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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DAC 2의 전원부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뉘어 시작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트로이달 트랜스를 3개로 분리하는 것 부터 말이지요. 이어지는 전원부 구조는 더더욱 기가 막힙니다. 위 사진은 Le DAC 2의 2차/3차 정전압 회로 입니다. 1차에서 이미 수 많은 캐패시터들을 사용하여 전기를 다듬은 이후의 경로인데요. 

 

2개씩 쭈욱 도열해 있는 캐패시터 라인 좌/우는 순수 아날로그 출력단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가운데 라인은 오로지 DAC 회로를 위한 전원단이구요. 그것도 모자라서 최종 출력단 쪽에 같은 물량으로 한 번 더(3차) 캐패시터와 회로를 구성하여 나열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를 우리는 진정한 듀얼 모노럴(Dual Mono) 구조라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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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부 뿐 아니라, 아날로그 단의 최종 출력단에도 좌우 완벽 대칭의 듀얼 모노럴 회로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대로 된 밸런스드 회로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지요. 사실, 앰프도 아닌 소스기기 단계에서 이 정도의  빌드 퀄리티를 보여주려면 소비자 가격 1천만원 초반대에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게, 어딜 봐서 보급기란 말인가?

 

다음 편 글에서는 메트로놈 Le DAC 2의 음향적/음악적 특성에 대해 다시 언급할 건데, 우선 오늘 살펴본 하드웨어 구성에 대한 것만 보더라도 Le DAC 2는 절대 보급기 수준이라 보기 힘든, 하이엔드적 소양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사실, 지면 관계상 Le DAC 2의 전원부 관련 사항만 소개해 드렸지만, DAC 회로구성의 수준이라든가 하이엔드 급 프리앰프에 준하는 아날로그 출력단의 퀄리티 등에 대한 설명도 할 말이 많습니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역시나 전원부 구성 퀄리티이기 때문에 집중하여 소개해 드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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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는 아주 심플한 인터페이스입니다만, 우리가 하이엔드 오디오에 기대하는 것은 다양한 기능이 아니라(그렇다고 해서 Le DAC 2의 기능 확장성이 떨어지는 건 또 아닙니다.)인상적인 하이엔드 사운드 퀄리티라는 점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메트로놈은 1억원대의, 비교적 잘 팔려나간 플래그쉽 모델에서도, 그리고 오늘 소개하는 Le DAC 2 에서도 이러한 진리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는 셈이지요.

 

Le DAC 2에서 이 정도의 하이엔드 빌드 퀄리티를 볼 수 있는건, 메트로놈이 의미 있는 플래그쉽, 1억원 상당의 디지털 소스기기를 개발해낸 역량과 기술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잘 못하는 일 하나, 제품을 저렴하게 원가에 타협하여 만드는 일을 메트로놈 역시 잘 못합니다. 현재 브랜드 최상위 라인업인 AQWO의 아랫 모델이라고 만들어 내었지만 제품 가격만큼 충분히(?) 퀄리티를 다운시키지는 못했던 거죠.

 

 

어쨌든, 우리 오디오파일들에게는 매우 먹음직스러운 제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필자가 이러한 Le DAC 2의 만듦새보다도 사실, 더 호평하는 것은 음질인데요, 일단 동 가격대에서는 Le DAC 2와 비슷하기라도 한 퀄리티의 DAC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음향이 아닌 음악을 제대로 의미 있게 만들어내는 것...말이 쉽지 디지털 소스기기 분야에서는 정말 이룩하기 힘든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요약하자면 메트로놈의 Le DAC 2, 3~4천만원 대 초 하이엔드 제품에서나 엿볼 수 있는 빌드/음향 퀄리티를 1천만원 초반에서 의미 있게 누릴 수 있다는 것이 포인트 되겠습니다. 사실 1천만원 안팎에서 인기몰이좀 하는 듯 하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져간 DAC제품들이 몇몇 있었는데, Le DAC 2만큼은 유행 같은거 신경 쓰지 않고 꾸준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듭니다. 가격만 터무니 없이 확 안 오른다면 말이지요. (사실, 이 정도면 가격이 1천만원 중 후반대까지 가더라도 큰 불만은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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